
경주에서 APEC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조금 의아했습니다. 천년 고도의 품격은 알겠는데, 과연 세계 정상들이 묵을 만한 호텔이 제대로 갖춰져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경주 3대 호텔(힐튼 경주, 라한셀렉트 경주, 소노캄 경주)을 직접 점검한 영상을 보고 나니, 제 편견이 얼마나 낡은 것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보문호수를 품은 이 세 곳의 호텔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신라의 미학과 현대적 감각을 조화롭게 담아내고 있었고, 특히 소노캄의 경우 1년간의 레노베이션 끝에 APEC에 맞춰 재개관했다는 점에서 준비성이 돋보였습니다.
소노캄 경주, 보문호수 야외 스파와 한국적 객실의 조화
평소 홍천 소노를 자주 다녀왔던 저로서는 '소노캄'이라는 브랜드가 익숙했지만, 경주 소노캄은 완전히 다른 결의 매력을 보여줬습니다. 홍천이 산세를 배경으로 한 대규모 리조트 느낌이라면, 경주는 보문호수의 잔잔한 수면과 신라의 역사가 어우러진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끈 건 경주 유일의 보문호수 야외 스파인 '웰니스 프렌치 스파'였습니다. 여기서 '웰니스 스파(wellness spa)'란 단순히 물놀이를 즐기는 워터파크가 아니라, 온천수를 활용해 심신의 회복과 이완을 목적으로 하는 휴양 시설을 의미합니다(출처: 대한관광공사). 실제로 이곳은 성인들이 조용히 온천을 즐기기에 최적화된 구조로,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 시설과는 확실히 구분됩니다.
실내 스파는 폭포가 쏟아지는 입체적 공간 구성, 동굴 속을 유영하듯 설계된 시크릿 풀, 레인 풀 등 테마가 다채로웠습니다. 제가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영상만으로도 마치 지하 동굴 속 비밀 온천에 들어온 듯한 몰입감이 느껴졌습니다. 야외 스파는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신라시대 동궁과 월지의 곡선미를 본떠 설계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수영장이 아니라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보문호수를 바라보며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는 경험은, 경주라는 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일 것 같았습니다.
객실 역시 한국적 정체성을 세심하게 반영했습니다. 새로 오픈한 디럭스 스위트 객실은 한옥 특유의 차분한 목재 톤과 마루 바닥을 활용해 전통미를 살렸고, 동시에 보문호수 전망을 시원하게 담아내는 큰 창을 배치해 개방감을 더했습니다. 가족 단위 여행객을 위한 넉넉한 공간 구성, 공기청정기 같은 디테일한 어메니티까지 갖춰져 있어, 5성급 호텔의 면모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로비와 복도에서도 한지 문창살 디자인이 곳곳에 녹아 있어, 경주만의 고유한 감성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간 전체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뷔페 '셰프스 키친'은 지하 1층에 위치해 있으며, 공간이 예쁘고 음식도 무난하면서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만 시간제한이 있고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는 점은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소노캄 경주는 과거 대명 리조트의 가족 중심 이미지를 벗고, 5성급 호텔에 가까운 품격으로 재탄생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힐튼과 라한셀렉트, 글로벌 품격과 현대적 감각의 대비
힐튼 경주는 1991년 대우그룹이 건설한 호텔로, 건축가 김종성이 설계한 공간입니다. 여기서 '정통 5성급 호텔'이란 단순히 시설의 화려함이 아니라, 서비스 표준과 공간 설계, 부대시설의 종합적 완성도가 국제적 기준을 충족한다는 의미입니다. 힐튼 경주는 팔각형 천장과 대리석 바닥으로 신라의 미학을 로비에 담아냈고, 로비 라운지 '신라코트'는 야외 정원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APEC 행사에서 미국 방문단이 이곳에 묵을 예정이라는 점만 봐도, 국제적으로 검증된 브랜드의 신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객실은 전형적인 미국 호텔 스타일로 카펫이 깔려 있고, 가족 여행객을 위한 킹 침대 2개 구성이 특징입니다. 보문호수 전망은 탁 트이지는 않지만, 암석 숲과 야외 수영장이 가까이 보이며 야외 발코니가 있어 호흡을 트이게 해 줍니다. 욕실은 밀레니엄 힐튼 서울과 유사한 구조로, 샤워와 욕조가 함께 있는 형태이며 크랩트리 앤 에블린 제품이 제공됩니다. 제가 과거 해외 힐튼 체인에 묵었을 때도 비슷한 구조였던 기억이 나는데, 이런 일관성이 바로 글로벌 체인 호텔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익숙한 안정감은 있지만, 지역 고유의 색깔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부대시설 중 수영장 '유레카'는 아이들과 놀기 좋지만 하절기에만 운영되고 입장료가 비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조식 뷔페 '레이크사이드'는 정원을 보며 식사할 수 있고 소노캄보다 더 다양한 메뉴를 제공해 만족도가 높습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다빈치, 중식당 실크로드 등 다른 식음업장도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며, 이는 힐튼이 경주에서 가장 품격 있는 5성급 호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다만 객실 및 시설의 연식이 느껴지는 부분과 카펫 사용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루나 타일 바닥을 선호하는 편이라, 카펫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라한셀렉트 경주는 1992년 호텔 현대 경주로 개관해, 2020년 대대적인 개보수 후 라한셀렉트로 재개관한 곳입니다. APEC 만찬 행사가 열릴 예정인 만큼, 경주 유일의 두 5성급 호텔 중 하나로서의 위상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로비는 높은 층고와 웅장한 규모,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트인 개방감이 압도적이며, 복도와 엘리베이터 곳곳에서 신라 문화와 모던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디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객실은 모던한 스타일로, 디럭스 트윈 객실은 넓고 깔끔하며 밝은 마루바닥과 목재 톤 가구가 특징입니다. 보문호수 전망은 세 호텔 중 가장 탁 트이고 아름다워, 제가 영상을 보면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입니다. 욕실은 넓고 화장실·샤워 부스·욕조가 분리되어 있으며, 라한 자체 제품과 디테일한 어메니티 제공에 신경 썼다는 게 느껴집니다. 수영장은 실내와 야외로 나뉘며, 성인용 레인 풀과 아이들을 위한 키즈풀·베이비 풀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투숙객도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50% 할인 혜택이 있어, 힐튼보다는 합리적인 편입니다.
식음장 '더 플레이트'의 조식은 층고가 높아 공간감이 훌륭하며, 서울이나 제주 5성급 호텔 조식에 비해 가격 대비 매우 만족스럽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푸드코트 형태의 '마켓 338'과 경주 로컬 먹거리를 파는 '경주 상점' 등 다양한 식음 및 쇼핑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키즈 라운지, 볼링장, 북카페 등 아기자기한 부대시설도 투숙객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며, 이는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특히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경주 호텔들은 객실 투숙 인원 기준(occupancy rate)에 관대한 편입니다. 여기서 '객실 투숙 인원 기준'이란 한 방에 몇 명까지 추가 요금 없이 묵을 수 있는지를 정하는 호텔 정책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서울이나 부산의 5성급 호텔은 이 기준이 엄격한 편인데, 경주는 가족 여행객을 배려해 좀 더 유연하게 운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출처: 한국호텔업협회).
경주 3대 호텔을 종합적으로 점검한 결과, 서울·부산·제주 외 지역의 5성급 호텔에 대한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각 호텔은 경주만의 지역색을 잘 담아냈고, 객실·시설·식음 퀄리티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스파를 원한다면 소노캄을, 스파 외 다양한 경험을 원한다면 라한셀렉트를 추천하며, 힐튼은 힐튼 티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때 고려할 만합니다. 다만 투숙객에게조차 수영장이나 스파 이용료를 별도로 부과하는 운영 방식은, 5성급 명성에 비해 아쉬운 부분입니다. 국내 다른 5성급 호텔들이 투숙객에게 부대시설을 무료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주 호텔들도 이 부분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습니다.
세 호텔 모두 APEC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호텔 수준은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APEC 행사가 아니더라도, 다음 경주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 세 호텔 중 하나를 선택해 보문호수의 고즈넉한 정취와 함께 진정한 힐링을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저 역시 조만간 홍천에서의 익숙한 편안함을 넘어, 경주 소노캄만의 신라 감성 속에서 특별한 휴식을 누려볼 계획입니다.